국가 없는 국가를 여행하는 법: 미승인국·사이공간의 정치지리학

미승인국 여행

우리는 세계지도를 통해 세상의 구조를 학습하지만, 그 지도엔 없는 국가들이 있다. 유엔에 가입하지 못했거나, 소수만이 승인한 정치체를 우리는 미승인국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땅과 군대, 화폐, 국경을 갖고 있으며, 대부분은 자국민의 자치와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존재한다. 미승인국 여행은 단순한 탐방이 아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경험이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로 방문 가능한 5개의 대표 미승인국을 소개하며, 여행자가 알아야 할 윤리, 현실, 리스크를 정리한다.

1. 트란스니스트리아 (Transnistria) – 소련이 멈춘 땅

위치: 몰도바 동부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0년에 독립을 선언했지만 국제적으로 승인받지 못한 채, 자체 정부·화폐·군대를 운영 중이다. 도시는 마치 1980년대 소련 시절에 멈춘 듯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미승인국 여행 포인트

  • 수도 티라스폴: 소비에트 상징과 동상들, 루블화 사용
  • 구 소련식 공공건물 탐방
  • 국경 진입 시 별도의 입국 허가증 발급 필요 (스탬프는 없음)

여행 팁

  • 몰도바 키시나우에서 버스로 이동 가능
  • 러시아어만 통용되며, 영어 안내 드묾
  • 정치적 발언, 사진 촬영 시 주의 필요

2. 북키프로스 터키공화국 – 지중해의 분단 섬

위치: 키프로스 북부

1974년 터키의 군사 개입 이후 탄생한 북키프로스는 터키만이 이를 국가로 인정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도 미승인 상태다. 남북은 유엔 완충지대(그린라인)로 구분된다.

미승인국 여행 포인트

  • 니코시아(레프코샤): 유럽 유일의 분단 수도
  • 키레니아 해변과 셀주크 건축 유산
  • 도보로 남북 왕래 가능 (검문소 통과 필요)

여행 팁

  • 터키를 통해 입국할 경우, 키프로스 본토 재입국에 제한 가능성 있음
  • 북키프로스 입국 시 별도의 여권 스탬프는 붙이지 않음
  • 현지 화폐는 터키 리라 사용

3. 아르차흐 공화국 (나고르노-카라바흐) – 지워지는 국가의 흔적

위치: 아제르바이잔 내 영토 분쟁 지역

2020년 전쟁 이후 점차 아제르바이잔에 흡수되며 실질적 통치력이 약화된 아르차흐는 오랫동안 아르메니아계 주민의 미승인국으로 존재해왔다. 현재는 여행이 사실상 제한되어 있으나, 과거의 정치지리 사례로 중요하다.

미승인국 여행 포인트

  • 과거 수도 스테파나케르트의 아르메니아 건축 유산
  • 구 소련식 도시계획 흔적
  • 전쟁기념관과 반군 진영 설치물

여행 팁

  • 현재는 여행 불가 또는 매우 제한적 (정치 리스크 높음)
  • 아르메니아 입국 도장 보유 시 아제르바이잔 입국 불가 가능성 있음
  • 사례 연구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함

4. 압하지야 – 흑해 연안의 독립된 정체성

위치: 조지아 북서부

압하지야는 1990년대 초반 조지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이후 러시아, 시리아 등 일부 국가로부터만 인정받고 있다. 현재 러시아 국경을 통해 입국이 가능하며, 자체 정부와 언어,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

미승인국 여행 포인트

  • 수후미: 흑해 해변, 소비에트 유산 건축
  • 코카서스 산맥 트레킹 루트
  • 압하지야 민속박물관과 전통 가옥 탐방

여행 팁

  • 러시아를 통해 육로 입국, 온라인 사전 허가서 신청 필수
  • 출입국 기록은 다른 국가 입국에 영향 미치지 않음
  • 외부 촬영 및 정치적 대화는 매우 주의해야 함

5. 소말릴란드 – 국가보다 더 국가 같은 미승인국

위치: 소말리아 북부

소말릴란드는 소말리아로부터 1991년 독립을 선언하고, 이후 실질적인 국가 기능을 유지해왔다. 독자적인 선거, 경찰, 화폐, 외교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지만 단 한 나라도 정식 국가로 승인하지 않았다.

미승인국 여행 포인트

  • 수도 하르게이사에서 소말릴란드 화폐와 국기 체험
  • 라스 게일 동굴벽화 (수천 년 전 선사 벽화 유산)
  • 유엔 및 국제 NGO와 협력하는 개발 프로젝트 방문

여행 팁

  • 입국 시 별도의 사전 비자 필요 (아디스아바바 또는 두바이에서 발급 가능)
  • 여권 스탬프는 ‘소말릴란드’ 명칭 사용, 일부 국가 입국 시 문제 가능성 있음
  • 여행자 대비시설은 제한적이나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

미승인국 여행은 존재를 묻는 철학적 체험이다

미승인국 여행은 공식 국가도, 완전한 무정부 상태도 아닌 제3의 공간을 걷는 여정이다. 국가라는 제도는 법률이 아니라 실천이며, 정체성은 외부의 인정보다도 그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여행자는 그 공간을 통해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한다.

국경이 없거나, 너무 많아서 겹쳐 있는 이 공간들에서 여행은 곧 사유가 되고, 이동은 곧 정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