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여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세상에는 태어날 때부터 어떤 나라의 국민도 아니며, 여권조차 발급받지 못하는 무국적자들이 있다. 그들은 이동할 수 없기에, 한곳에 갇혀 살아야 한다.
반대로, 우리가 그들의 삶이 남은 장소를 찾아가는 무국적자 여행지는 단순한 ‘국경 너머’가 아닌, 국경 자체가 부재한 세계의 경계에서 인간 조건을 다시 묻는 여정이 된다. 이번 글에서는 여권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은 세계의 5개 장소를 소개한다.
1. 콕스바자르, 방글라데시 – 로힝야 난민의 집단 정착지
미얀마 라카인 주에서 탈출한 로힝야족은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한 채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이주했다. 콕스바자르에는 현재 약 90만 명 이상의 로힝야 난민이 임시로 거주하고 있다.
- 여권도, 국적도 없는 집단의 삶이 형성된 공간
- 국경과 인권, 종교, 국제정치가 얽힌 생존 지대
- UNHCR의 최대 지원 캠프 중 하나
방문 시 주의사항
- 일반 여행자 출입은 엄격히 제한됨
- NGO 협력 또는 인도적 봉사 프로그램 참여를 통한 간접 경험 가능
- 인근 지역에서 난민 전시관, 다큐 상영 등 시민 교육 콘텐츠 존재
2. 바티칸 외곽, 로마 – 여권 없는 국적자들의 아이러니
바티칸 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이지만, 시민권은 대부분 성직자에게만 부여된다. 이중국적을 금지하는 국가 시스템 때문에, 바티칸 시민이 되면 자국 국적을 포기해야 하고, 사임 시 자동으로 ‘무국적자’가 된다.
- 현대적 법체계 안에서 발생한 의도적 무국적자
- 권력과 신분, 경계를 둘러싼 국가 정체성의 아이러니
- 국가의 실체를 묻는 정치지리적 여행 포인트
여행 포인트
- 성 베드로 광장, 교황청 근처 외곽 거주지역
- 바티칸 출입경 경계선의 상징성 관찰
- 바티칸 외교관 여권과 일반 시민권 제도 비교 전시
3. 서사하라, 아프리카 – 잊힌 민족 사막의 국경 없는 나라
서사하라는 모로코와 알제리 사이에 위치한 분쟁 지역으로, 사하라위 민족은 1970년대 이후 자신들의 독립국가를 선언했지만 국제사회는 대부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국적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
- 국가는 있으나, 여권은 존재하지 않는 사례
- 독립 투쟁과 난민의 삶이 50년 가까이 지속된 지역
- 국적이 곧 정치가 되는 곳
여행 포인트
- 알제리 측 티파리티, 라윤 등 사하라위 자치지구 방문 가능
- 현지 활동가 인터뷰 및 정치 캠프 견학 (사전 허가 필수)
- 유럽 NGO와 연계된 문화 교류 프로그램 참여
4. 쿠웨이트 – ‘비두인’이 살아가는 무국적자의 도시
쿠웨이트에는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한 ‘비두인(Bidun)’ 공동체가 있다. 이들은 아랍계이지만 정식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의료, 교육, 직업 등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받는다.
무국적자 여행지로서의 의미
- 국경 안에 있으면서도 국적이 없는 ‘비가시적 존재’
- 부유한 국가 내에서의 내부 이방인
- 국적과 복지, 차별의 구조적 연결고리 관찰 가능
여행 포인트
- 비공식 거주지역 인근을 지나며 ‘보이지 않는 도시’ 체험
- 공공서비스 접근성 격차와 도시계획의 불균형 관찰
- 현지 미디어 전시 또는 인권 단체 활동과 연계 가능
5. 국제공항 환승구역 – 진짜 ‘무국적자’의 임시 생활권
영화 <터미널>처럼, 여권이 무효화되거나 국적을 잃은 이들이 공항 환승구역에 갇힌 채 생활하는 사례는 실제로 존재한다. 이들은 법적으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는 떠나지도 못한다.
- 법과 공간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인간
- 국경 통제 시스템의 허점이 만든 ‘존재의 중립지대’
- 일시적 무국적 상태의 극단적 사례
여행 포인트
- 파리 샤를드골, 런던 히드로, 방콕 수완나품 공항 등 사례 존재
- 공항 내 다큐멘터리 전시나 인권단체 기록관 참고
- 국제공항 보안 구역의 철학적 의미 탐색
무국적자 여행지는 국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묻는 여정이다
무국적자 여행지는 우리가 ‘여행’을 너무 당연히 생각해온 사고방식에 경종을 울린다. 여권 없이 태어난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이동하지 못하며, 이름도 없는 국가 속에서 살아간다. 국적은 정체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이동과 권리를 통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당신이 세계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특권이다. 여행이 자유가 아니라 구조적 현실의 일부임을 아는 것, 그 인식이 진짜 ‘깊은 여행’의 출발일지도 모른다.